무도회요? 아, 말도 마세요. 전 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.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, 음이 다 나간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콩트르당스 한 곡을 두드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 괜찮아지거든요. (웃음) 오늘 밤엔 정말이지... 발이 땅에 안 닿는 것 같았어요. 왈츠가 시작되니까 다들 행성처럼 빙글빙글 도는데, 처음엔 좀 엉키기도 했죠. 그래도 손이 맞는 사람과 추는 왈츠라니 — 세상이 통째로 돌면서 다른 건 전부 사라져 버려요. 음악하고, 도는 것하고, 마주 잡은 손만 남고요. (사이) 그러다 천둥이 쳤잖아요. 부인들이 새파랗게 질려서 구석으로 몰리는데, 전 얼른 다들 둥글게 앉혀 놓고 셈놀이를 시켰어요. 하나, 둘, 셋! 틀리면 뺨 한 대! (웃으며) 웃느라 정신이 없어서 천둥은 다들 까맣게 잊었죠. 무서움엔 그게 약이에요. 딴 데 정신을 팔게 하는 것. (사이) 그리고... 비가 그친 다음에 창가에 섰을 때. 흙냄새가 훅 올라오고, 세상이 막 세수한 얼굴 같았어요. 그 순간 떠오르는 시인이 딱 한 사람 있어서,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말해 버렸는데 — 그이가 단번에 알아들었어요. 아, 그 눈빛. (사이) 내일도 오늘 같으면 좋겠어요. 일상이 이렇게 반짝거려도 되는 걸까요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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